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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bi Han

Debbie Han,two graces iii,150x170cm, photography, 2009


한국에서의 충격적 체험:석고상과의 만남

데비 한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므로 교포 1.5세대 작가다. 그런데도 우리말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나는 그녀가 대화 중에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미국에 살 때도 내내 각별히 신경을 쓰며 우리말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 관한 한, 거의 전문가적인 경지에 도달해 있다. 그래서 데비 한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처음엔 사방으로 치솟은 발랄한 헤어스타일에 놀라고, 다음에는 첫인상과는 영 다른 조신한 태도와 겸손한 어투에 놀란다. 데비 한에 대한 이 특이한 인상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더욱이 일상 속에서 참선(參禪)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데비 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미의조건>(2004- ) 을 이해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도자기를 굽는 일을 득도(得道)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최고의 경지인 명품은 물론이요, 도자 예술 자체를 하나의 선의 경지로 보는 도예인 특유의 자부심과도 관련이 있다. 흙과 불의 예술인 도예에 흔히 차와 참선이 따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데비 한은 귀국 후 청자 조각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서양의 고전인 비너스의 두상을 청자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에 착안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입시학원에서 보았던 석고 데생의 충격이었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에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진기한 광경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우개 드로잉-비너스>(2004), <지우개 드로잉-아그리파>(2004), <지우개 드로잉-아리아스>(2004) 연작이다. 이 연작은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이 석고상을 그릴 때 이젤 받침대 위에 수북이 쌓이는 지우개 밥을 가지고 만든 것이다. 여기서 굳이 ‘만든’ 것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그 작품이 전형적인 드로잉 기법을 이용하여 ‘그린’ 것이 아니라, 지우개 밥을 종이 표면에 접착제로 일일이 붙여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물로 ‘만든’ 드로잉인 셈인데, 한국의 미술교육에 대한 톡 쏘는 풍자도 풍자려니와 재료에 대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청자로 비너스의 두상을 만든 <전지전능한 일상의 상들>(2004) 연작은 이 드로잉 작품과 관련이 있지 않나 여겨진다. 제작 시기로 봐선 이 지우개 드로잉과 청자 조각, 그리고 고등학교 학생들의 기념촬영 사진을 패러디한 작품인 <아그리파의 반()>(2004), 미인대회를 풍자한 <미의 조건>(2004) 등등이 서로 맞물려 있다. 왜 하필 2004년인가? 이 시기는 데비 한이 쌈지 스페이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입주 작가로 머물던 시기였고, 그곳은 입시미술학원이 몰려 있는 홍익대학교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원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홍보용 석고 데생 사진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 뒤집어 보기:이화(異化)의 전략

데비 한은 국적이 미국인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말하자면 한국인인 동시에 미국인인 셈이다. 이 태생적 한계가 예술가로서의 그녀에게는 장점일 수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가령, 국외자의 시선에서 좀더 객관적으로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관찰할 수 있는 입장은 장점일 수 있다. 일정한 거리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내러티브는 대부분의 경우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또한 한국의 독특한 사회구조와 한국인의 이중적 의식구조는 작품의 소재의 원천이다. 그래서 데비 한 작품의 대다수는 사회적 콘텍스트와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상의비너스>(2006- ) <여신들>(2007- ) 연작이다. 이 연작들은 ‘0.618:0.382’라는 폴리클레이토스Polikleitos의 미의 표준율에 의해 제작된 희랍의 고전기 조각을 한국 여인의 평범한 몸으로 대체한 사진 작품들이다. 즉 얼굴은 서구적 미인의 표상인 비너스의 모습을 취하되, 몸은 평범한 한국 여인의 것을 촬영하여 디지털로 합성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 검은 색 바탕에 희게 드러난 여인의 몸은 섬세한 디지털 작업을 거쳐 매끄러운 대리석 조각의 질감으로 바뀌어 있다. 컴퓨터에 의한 디지털 합성 기술의 발달 때문에 제작이 가능한 데비 한의 이 사진 작품들은 한국인,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젊은 여성들의 이중적 의식구조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담고 있다. 가령, <인사하는 여신>(2007)에 나타난 공손한 여성의 이미지는 한국의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다소곳한 안내원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수줍은 여신>(2007)은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수줍은 척 내숭을 떠는 처녀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위상이 전에 없이 신장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부계사회 전통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한국 여성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이 이중적 성격을 서구 미인의 전형인 비너스의 얼굴을 빌어 풍자한다. 그녀가 구사하는 이 이화(異化:alienation)의 전략은 작가가 사회적 맥락 속에 침투하여 ‘말을 걸기 위해’ 고안해 낸 일종의 ‘부비트랩’인 셈이다. 그것은 뇌관만 건드리면 곧 터질 것 같은, 여러 가지 모순된 현상들로 범벅이 된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향하고 있다. ()의 상품화가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의 음습한 단면은 겉으로는 근엄하지만 속으로는 미인을 요구하는 남성적 시선-비록 성형 수술로 조작된 것이라도 좋은-이 도처에 깔려 있는 사회적 현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이 회사에 입사하는데도 아름다운 용모는 필수 조건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 30대 여성의60퍼센트 정도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 수치는 거리에 넘쳐나는 비슷한 패턴의 인조 미인의 급증을 설명해 준다. 데비 한의 <적자생존>(2006) 연작은 미인이 되고싶은 여성들의 심리를 풍자하고 있다. 비너스의 얼굴에 고치고 싶은 부위를 펜으로 드로잉한 이 사진 작품을 통해 그녀는 미의 이면에 가려진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걷는 삼미신(三美神)>(2007)은 희랍의 고전적 미인의 화신인 비너스와 아리아스의 얼굴에 한국 여인의 몸을 합성한 작품이다. 가운데 아리아스가 있고, 양 옆에 두 명의 비너스가 있다. 작품 속에서 아리아스는 왼쪽에 있는 비너스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으며, 오른 쪽의 비너스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앞을 바라보고 있다. 세 여신들은 지금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세 여신의 포즈가 서구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광경과는 매우 다른 데가 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인 것이다. 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광경은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데비 한은 여기서 서구와 한국 혹은 아시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시선을 던진다. 그녀는 이들 세 여신을 ‘조각화’함으로써 동양과 서양을 융합시킨다. 서구의 얼굴에 동양의 몸을 결합시킨 이 작품을 통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작품이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조각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화(異化)와 동화(同化)가 빚어내는 상호 모순은 그녀의 작품이 충격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돼준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상이한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몸짓이 지닌 문화적 함의에 대해 발언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 단순해 보이는 하나의 몸짓이나 행동도 고유한 문화권 내에서 형성된 오랜 사회적 관습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의 다양한 해석과 반응을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데비 한은 이 <여신들> 연작을 통해 관념화된 미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해체하여 본래의 한국 여성에 내재된 미의 특질을 복원하고자 한다. 여기서 ‘관념화된’ 미인이란, 그녀의 말을 빌리면, “미술관이나 미술책에서 볼 수 있는”, 마치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서구적인 완벽한 얼굴을 가리킨다. 소위 ‘조각적인’ 얼굴과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는 오늘의 한국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체형이 아닌가.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무비판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 사회적 관행에 대해 <여신들> 연작을 통해 강한 태클을 걸고 있다.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 ’에 주목하여 한국의 평범한 여인들의 일상적인 몸짓과 자태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의 특질에 대해 주목하자고 목소리의 톤을 높인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히 희랍의 전형화된 미인의 얼굴(비너스로 대변되는)에 한국 여인의 평범한 몸을 결합한 것은 아닐까. 비너스 혹은 아리아스의 얼굴에 한국 여인의 신체를 결합하여 굳이 <여신들>이란 타이틀을 붙인 까닭은 다시 그녀의 말을 빌리면, “서구문화와는 구별되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미적 아이덴티티를 서구적인 관점이 아닌 아시아 문화의 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싶은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여신들> 연작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닌, 현실에 대한 응시를 통해 서구와 한국 내지는 아시아라는 두 문화권의 차이를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서구와의 이상적인 하모니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순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녀는 이 연작을 통해 “아이덴티티와 관련된 미의 진정한 모습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Debbi Han

Debbi Han,goddesses of the world no[1].4, 45x45x4cm, lacquer, wood, hemp cloth, mother-of-pearl

Debbi Han

Debbi Han,goddesses of the world no[1].6, lacquer, wood, hemp cloth, mother-0f-pearl, 2008


서구의 제국주의적 문화 권력에 대한 풍자

데비 한은 4년 가까이 한국에 머물면서 모국의 사회를 관찰할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 모국어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도 했다. 그것은 모국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모국의 사회와 문화의 구조를 몸으로 체감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그녀가 계속 이 땅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시나 혹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일본, 스페인, 독일 등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작업에 대한 그녀의 사고는 더욱 깊어졌으며,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예리하고 폭넓어 졌다. 사실 데비 한의 작업 과정을 보면 한국에 머문 이후 뚜렷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측면이 있다. <미의 조건>을 비롯하여 <일상의 비너스>, <여신들>에 나타나는 비너스의 이미지, 고등학교 단체 사진을 패러디한 <아그리파의 반()>, 미인대회를 풍자한 <미의 조건> 등등이 한국의 체류 기간 중에 제작되었다. 청자로 비너스 상을 빚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랐을까? 고등학교 단체사진 속의 학생들 얼굴을 아그리파의 모습으로 대체한 아이디

어는? 나는 그녀의 이 사진 작업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미술교육의 획일화에 대한 이 촌철살인의 풍자는 그 어떤 심각한 보고서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데비 한 특유의 이 ‘비틀기’ 방식은 <자위하는 비너스>(2007)에 이르면 점입가경을 이룬다. 도대체 비너스가 자위를 하는 장면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미에 대한 신성모독이 아닌가? 화석화된 고전(비너스)에 한국 여성의 몸을 합성하여 생명을 불어넣은 이 일련의 사진작업은 <걷는 삼미신(三美神)>(2007)에 이르면 동성 간의 친교 관계를 둘러싼 서구와 한국의 서로 다른 문화적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데비 한은 어렸을 적부터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녀가 던진 질문은 주로 ‘무엇(what)’보다는 ‘왜(why)’였다. 사춘기 시절부터 “규정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적 관습”, 나아가서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한 질문들은 가령, “과연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존재하는가.”와 같은 명제를 낳았다. <미의 조건>(2004- ) 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작가 나름의 답변이다. 청자로 만든 이 연작에서 데비 한은 많은 ‘비틀기’를 수행했다. 비너스의 두상에 아프리카인의 입술, 아시아인의 눈, 유럽인의 코 등등 다양한 인종의 얼굴을 표현했던 것이다. 이 일련의 조작을 통해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란 결국 하나의 문화권이 만들어낸 허구임을 풍자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서구로 대변되는 제국주의적 문화 권력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항거가 담겨 있다.

 

 

광고와 남성 중심 문화에 대한 풍자

2005년 데비 한은 <미인> 연작을 제작했다. 노경의 할머니들을 분장시켜 찍은 사진 작품들이다. 이 작품 역시 천편일률적으로 미인을 등장시키는 화장품 광고의 트랜드에 대한 데비 한 특유의 ‘비틀기’ 전략이다. 그녀는 화장품 광고를 둘러싼 자본의 속악한 전략을 전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양로원이나 노인정을 방문하여 80세 이상된 할머니 모델을 선정, 화장을 시켰다. 가능한 한 화려하고 예쁘게, 그러나 삶의 지난한 여정에서 숙성된 지혜와 노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메이크업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갈망과 욕구를 끝없이 부추기고 유혹하는” 화장품 광고의 허상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상품화를 촉발하는 자본의 판매 전략을 비틀고 있다. , “서구적이고 도시적이며 참신한” 모델만을 기용함으로써 유혹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양산하는 광고문화에 대해 노년의 아름다움을 대비시킴으로써 아름다움이 단지 젊은 여인의 모습에만 있지 않음을 예증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정체성에 대한 데비 한의 예술적 편력은 광범위한 사회적 내지는 문화적 콘텍스트 속에서 진행된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에 걸쳐 진행된 <식과 색> 연작은 그 대상이 한국, 독일, 일본에 걸친 광범위한 문화적 탐색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여성을 둘러싼 광고 이미지가 어떻게 ‘성()’과 연관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이 세 나라 고유의 음식을 통해 성찰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사 ‘먹다()’ 와관련된것이다. 한국에서 이 말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관용적으로는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데비 한은 <식과 색> 연작을 통해 아름답게 꾸며진 여성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가 주로 남성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러한 사회적 관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음식을 여성을 꾸미는 미적 아이템으로 변형시킨 시각적 반전을 통하여 여성의 성이 음식과 같이 섭취, 소비되는 풍토와 그 같은 사회적 관점의 기이함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데비 한, 작가노트)

이것은 분명한 반어법이다. 일종의 뒤집기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문장을 통해 그녀의 시선이 남성 중심의 사회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먹는 주체로서의 남성 중심적 사회와 그러한 관행에 대한 예리한 풍자인 것이다.

<식과 색>(2005- ) 연작은 한국의 대표적 식재료인 갖은 양념을 비롯하여 독일의 소시지, 그리고 일본의 사시미, 우메보시, 오뎅을 사용하여 작품화한 것이다. 그녀는 각 나라를 여행하면서 거리나 지하철, 수퍼마켓 등지에서 마음에 드는 익명의 젊은 여성들을 섭외하여 모델로 초대했다.

유명한 광고 모델이 아닌 평범한 여성을 모델로 섭외했다는 사실은 데비 한의 <식과 색> 연작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작가는 유명한 광고 모델을 통해 아름답고 현란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상업 광고의 관행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다. 이른바 ‘트랜드화한’ 상업 광고의 교묘한 전략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화장술이나 스타일링, 컴퓨터를 통한 이미지의 변조는 그러한 전략에 따른 교묘한 전술인 셈이다. 작가는 평범한 여성의 몸을 통해 광고업계가 벌이는 이 교묘한 전략과 전술에 반전을 시도한다. 일상적 공간에서 만난 평범한 여성들을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으로 변신시킨다. 화장술과 스타일링에 관한 그녀의 탁월한 재능은 평범한 여성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신화를 창조한다. 이는 그녀의 작품이 성이나 몸의 담론과 관련된 페미니즘의 맥락을 비켜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그런 정치적 관점보다는 “여성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함께 발견해 나가길” 원한다. 이런 그녀의 프로젝트는 참여에 기대고 있다. 그러기에 동참한 여성과 그녀에게 있어서 이 프로젝트는 늘 “새로운 체험과 발견의 연속”이며, 그러한 까닭에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촬영으로 종결된 총 17편의 <식과 색> 연작은 미학적으로도 뛰어나며 완성도도 매우 높다. 특히 작품 하나하나에 스며든 아름다운 색채감과 디자인은 아트스트로서 데비 한의 탁월한 미적 감각과 조형능력을 예증해 준다.


Debbi Han

Debbi Han, seated three graces, 250x180cm, photography, 2009

Debbi Han

Debbi Han,terms of beauty vi,56x26x26cm,2009

Debbi Han

Debbi Han,two graces iii,150x170cm, photography, 2009

나전칠기 기법의 도입과 새로운 비너스 아이콘의 탄생

최근에 데비 한은 새로운 비너스 작품에 푹 빠져 있다. 비너스의 두상을 나전칠기로 가공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여신들> 연작과 <스포츠 비너스> 연작으로 나뉘어 제작된다. 우선 전자는 2005년에 제작한 <청자 드로잉>의 새로운 버전이랄 수 있다. 이번에는 나전칠기로 전면 개작(改作)될 예정이다. 이 연작은 서구 르네상스 시기의 타원형 초상화의 형식을 한국의 전통 공예에 녹여 동서의 문화를 융합하고 아울러 회화와 조각과 공예의 경계를 해체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 연작은 60센티미터 길이의 타원형 배경에 비너스의 실루엣을 얕은 부조로 조각한 뒤 실제의 이목구비는 서로 다른 인종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아프리카인의 두툼한 입술, 아시아인의 낮은 코, 내리 깐 부처의 눈과 같은 형국이다. 얼굴 표면은 조선시대에 개발된 타발법을 사용, 마치 계란껍질을 모자이크로 부착한 것처럼 자개로 뒤덮었다. 인물의 배경은 약간 갈색 빛이 도는 검고 그윽한 옻칠로 돼 있다.

후자는 “여성의 미가 문화의 산물로서 현 소비사회에서 어떠한 기능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라는, <식과 색> 연작에서도 다루어진 주제를 스포츠와 접목시킨 것이다. 대중적이란 점에서는 <미인> 연작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도 비너스는 다시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스포츠 비너스> 연작은 세계적인 미의 표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비너스의 두상을 축구공과 결합, 대중적 이미지로 부각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향후 축구뿐만 아니라 농구, 야구, 골프 등 대중 스포츠 공의 형태와 비너스의 두상을 융합, 나전칠기로 제작될 계획이다. 비너스의 얼굴 부분이 자개로 덮인 육각형 축구공의 이미지로 대치된 이 작품은 얼굴 부분의 영롱한 자개와 몸통에 칠해진 어두운 갈색의 전통 옻칠이 어울려 그녀의 새로운 아이콘의 하나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데비 한은 일찍이 미국에서 개념미술에 속하는 작업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1998년에서 2003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지성적 사고와 제작적 실천력을 겸비한 그녀는 흙과 모래, 자갈, 톱밥 등을 사용, 농구공만한 크기의 초콜릿을 만드는가 하면, 머리카락, 플라스틱, 나무, 페인트 등을 이용, 사탕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초콜릿, 형형색색의 젤리사탕, 케이크로 뒤덮인 변기라든지 옥수수 알갱이를 전신에 뒤집어 쓴 개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유니크한 것은 개똥으로 만든 초콜릿 셋트와 콘돔으로 만든 여성용 속옷일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free-sex-free>(2003)라 이름 붙인 작품은 빨강, 초록, 노랑 등 다양한 색상의 콘돔에서 얇은 비닐을 잘라내 서로 잇대어 바느질한 것이다. 이 작품들은 앙증맞은 속옷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정교한 외과수술처럼 장시간 동안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이 바느질은 <식과 색> 연작에서도 지속되고 있는데, 작가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에도 거리의 뒷골목에 버려져 있는 콘돔을 본떠 금속이나 수지를 이용,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캐스팅한 설치작품들이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데비 한은 서구적 사고방식과 동양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전자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사유 공간을 지배했다고 한다면, 후자는 성년기 이후의 의식을 점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이 엄격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미국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의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 있어서 가정교육은 전통적 사고방식을 체득할 수 있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춘기 시절에 “규정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적 관습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던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의 본질과 삶의 실체에 대한 갈망”이 의식의 중심부에서 일었던 때문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남달랐을 그녀에게 있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녀의 의식의 심부로부터 나오는 내러티브 그 자체이다. 나는 이제까지 그 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회와 문화란 무엇인가? 또 동양과 서양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데비 한이 이제까지 보여준 작품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완벽한 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편이 옳다. 그녀의 탁월한 상상력과 예술적 실천을 떠받치는 순발력이 그녀의 말처럼 “계속 삶의 체험과 도전을 통하여 무수한 가지로 뻗어나가며 자라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