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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ball 11월] Topic

Topic 2007.12.08 13:34


세계 현대미술계는 거품 논란과 함께 유래 없는 미술시장의 호황과 젊은 작가들의 득세로 그야말로 젊은 작가들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 젊은 신세대 집단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계를 주름잡는 일명 스타급 작가들의 산지 영국의 yBa는 유난히 90년대 후반 이후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싱글 채널 비디오를 넘어 장편영화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매체적 실험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2006년 yBa의 대표적 스타 더글라스 고든은 축구선수 지단을 모델로, 15대의 35mm 고성능 카메라와 미군에 의해 제공된 2대의 슈퍼 확대 카메라를 이용해 지단의 경기 입장 때부터 경기를 마치고 퇴장할 때까지 쉴새없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아낸 <지단, 21세기 초상>(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라는 영화를 만들어 칸영화제에서 상영하였다. 헐리우드의 패리스 힐튼만큼은 아닐지라도 영국 미술계의 유명인사 샘 타일러 우드는 일찍이 앨튼 존의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 제작을 실험한 바 있다. 이러한 작가들의 영화매체의 탐구는 비단 유럽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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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Douglas Gor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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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Douglas Gordon 

2006년 국내 방한해 <구속의 드로잉>을 선보인 바 있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미술가 매튜 바니는 90년대 <크리매스터>시리즈 이후 장편영화에 도전하며 21세기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의 항로를 개척해 가고 있다. 2006년 매튜 바니를 비롯해 마리나 아브라모빅 등 미술가들이 모여 만든 성인 에로물에 가까운 <Districted>라는 단편 옴니버스영화는 독립영화제의 선두주자인 선댄스영화제, 칸영화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회를 마쳤다. 그리고 매튜 바니의 <구속의 드로잉>은 물론, 그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 감독이 담은 제작 과정기 또한 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이제 미디어작가들의 영화는 갤러리, 미술관에서 프로젝션 되는 것뿐 아니라, 갤러리를 넘어 영화제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작가들의 영화 제작 현상은 비단 작가들만의 유행은 아닌 듯하다. 이들 영상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미술관들의 전시목록에 영화 상영 프로그램은 이제 필수목록이 되어 버렸다. 유럽을 대표하는 영국의 Tate Modern,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는 물론 뉴욕의 대표적 미술관인 MoMA, Walker Art Center를 비롯해 Film & Video department가 독립한 대표적 미술관들은 선구적 전시 사례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일찍이 40년대부터 필름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운영한 Walker Art Center와 MoMA는 이미 영화 탄생 20여 년이 흐른 모더니즘 초기 시점에서 Moving Image혹은 Moving Picture에 매혹당한 미술가들의 관심과 더불어 당시 MoMA의 젊은 초대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의 주도하에 1935년 뉴욕 최초로 미술관 내 영화부서를 오픈했다. 영화 관련 글들을 여러 편 쓰기도 한 알프레드 바는 영화를 당시의‘New Field’로 주창했고 영화는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될 뉴욕에서 제7의 예술로써 그 예술적 대중성을 담보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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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구속의 드로잉 1번 © Copyright Mattew Barney          우: 구속의 드로잉 2번 © Copyright Mattew Barney

그렇다면, 미디어아트의 범주를 넘어 영화film, 넓게는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에 대한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현대미술계 전반의 관심은 대체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것일까? 특히 미디어 작가들에게 영화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들에게 영화란 단순한 표현수단, 매체에 불과한 것인가?

얼마 전 백남준 KBS 기념 전시 세미나를 위해 방문한 바 있는 <New Media in Late 20th Century Art>의 저자이자 필름 메이커인 마이클 러시는 자신의 저서의 서론을 열며, 미디어 아트의 전사적 배경으로서 초창기 영화 탄생과 아방가르드 영화사를 그 계통사로 지적하고 있다. 머브릿지의 사진을 비롯해 에디슨, 뤼미에르, 그리고 당시 Moving Image시대의 영화적 사건들을 간략하게 언급한다. 또한 영화사에도 선명히 기록된 192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운동과 50-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발생한 새로운 영화운동이 백남준이 활동한 플럭서스 영화 작업에 영향을 미친 바를 서술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마이클 러시가 언급했던 영화의 영향력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첨언하자면, 모더니즘 시기 영화가 미술계에 끼친 상황과 사례들은 더욱 꼼꼼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마이클 러시는 프랑스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안나-마리 뒤게 교수의 글을 빌어 당시 모더니즘 미술은 무엇보다도 ‘시간’에 주목하였다고 밝힌다. 물론 그 배경에는 매체미학의 선구자 발터 벤야민이 밝힌 바 있듯이,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를 활용한 ‘영화’라는 새로운 충격적인 매체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유행하던 유럽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를 체험한 벤야민은 30년대 <기술 재생산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의 복제 가능 기술에 힘입어 전통적인 예술이 지닌 아우라는 상실되었고 이제 예술은 대중 참여적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영화에서 사용하던 클로즈업이나 고속 촬영을 예로 들며 벤야민은 카메라맨은 마치 외과의사처럼 인간의 내부로 침투해 내면을 세밀히 관찰하며 인간의 눈이 지각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보여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관객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화면 전환이 이루어지는 영화 화면은 곧 인간에게‘시각적 무의식’이라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각 경험을 발생시킨다고 역설한다. 지각 이론으로 인식되는 그의 매체미학의 핵심은 초기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시간성’과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날아오는 총알처럼 인간에게 충격을 가한다고 평가한 벤야민에게 영화는 그래서 더욱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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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er Benjamin (1892-1940)


벤야민이 역설하듯, 19세기 탄생한 새로운 혁신적 매체, 매혹의 시네마는 20세기 초반 당시 미술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미래파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물론, 현대미술의 선구자 뒤샹, 만 레이 등은 2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의 영향권 아래서 영화를 제작한다. 이에 앞서 유럽의 일군의 추상화가들, 오스카 피싱어, 발터 루트만, 한스 리히터 등은 기하학적 추상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실험했다.


                                                               Walter Benjamin (1892-1940)

당시 유럽에서 벤야민이 영화를 논하고 있을 때, 미대륙에는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 교수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영화의 예술적 성과와 움직임에 대한 논의를 대중화시킨 인물이자 뉴욕 MoMA가 아카이브 기관을 설립하고 영화가 예술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로자 역할을 했다. 독일 내셔널 시네마, 표현주의영화 분석가로 알려진 고전영화이론가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와 친분이 있었던 파노프스키 교수는 1936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강의를 통해 영화의 예술성을 설파했다. 도상학자였던 파노프스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을 분석하길 즐겼고,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공간의 역동성, 시간의 공간화”를 역설했다. 파노프스키의 영화 강의는 1930년대 초 프린스턴 대학의 Art& Archaeology 학과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된 비공식 강의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와 영화의 관계는 50년대까지 지속되고 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뉴욕 MOMA 영화부서는 현재까지 최고의 영화 아카이브 기관으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에이젠슈타인과 그리피스 영화는 당시 MoMA 영화 스크리닝의 인기 목록이었고, MoMA는 현재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영화 작업을 스크리닝하고 전시하는 작업으로까지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MoMA는 후기미니멀리즘 미술가 리처드 세라의 전시와 함께 그가 감독한 60년대 필름들을 상영하였고, 영국 테이트 모던은 초현실주의화가로 루이스 뷔뉘엘과 <안달루시아의 개>를 공동 감독한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와 영화세계를 보여 주었다. 이 전시는 현재 미대륙으로 이동, 순회 중에 있다. 달리가 제작한 영화들 혹은 달리에 관한 기록영화들을 상영하는 이 특이한 상영 목록은 세인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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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달리 이후 미니멀리즘 영화를 시도한 세라를 비롯해 1960년대, 팝아트, 비디오아트의 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600여 편에 이르는 아방가르드 영화 작업들을 추구한 앤디 워홀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자신의 팩토리를 방문한 뒤샹의 스크린테스트를 기록으로 남겼고, 에디슨의 초기영화 <Kiss>를 패러디해 동명의 <키스>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플럭서스의 오노 요코를 비롯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또한 <Zen for Film> 등 실험적 영화작업을 실천한 바 있다.



                                                                 안달루시아의 개, 1928년

이 지점에서 이처럼 과거 거대한 미술관의 영화적 유산과 뒤샹, 워홀과 같은 현대미술계의 선구자들의 매체에 대한 실험성이야말로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현대 미디어아트작가들의 영화 작업과 미술계의 영화에 대한 관심의 한 배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영화는 현대 미디어아티스트들이 21세기적 비전으로 도전한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대 미디어아티스트들은 뒤샹, 혹은 워홀이라고 하는 실험적 선구자들, 즉 이들 “거인 위에 올라탄 작은 거인”일지 모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제 어디서든, 미술관, 갤러리, 혹은 아트페어, 심지어 영화제에서도 영화인지 미디어아트인지 알 수 없는 다양한 Moving Image들을 체험하며 살아간다. 미술과 영화는 상호 차용과 패스티쉬를 반복하고 있고, 특히 미디어아트와 영화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학제적 연구의 심층적 분석과 논의가 요구된다. 그리고 미술사에 기록된 현대 미디어아트의 본격적 선구자로 지칭되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미술관 개관을 한해 앞둔 시점에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는 긴 터널속으로의 항해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다시금 제2의 백남준이라는 ‘작은 거인’을 꿈꾸어 본다.

글 _ eyeball director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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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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