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_볼거리 Spectacle_2010_1 채널 비디오_1분 7초
국내외적으로 스펙터클형의 보여주기 전시가 유행화되는 요즘 김범의 전시는 그야말로 소박한 아침밥상을 연상케 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아침밥을 먹기란 쉽지 않지만, 그 효과는 우리 몸에 이로운 보약임을 전문가들은 말하곤 한다. 소박한 밥상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이 소박한 밥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지름길임을 실감 할 수 있다. 김범의 이 소박한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통해 우리의 정신건강을 이롭게 하는 그 위력을 발산한다 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해 보인다. 서울대와 뉴욕대를 졸업하고 개념미술의 대표적 작가로 주목 받아 온 김범은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닐 수 도 있다>라는 다소 SF 적 주제로도 보이는 제목을 통해 그간 대상을 뒤틀어보는 방식의 연장선에서 일상에서 간과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를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재현한다. 그야말로 유물론적 세계관을 연상케 하는 2010년 신작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사물들>을 비롯해 인간을 둘러싼 일상의 다양한 오브제들을 질료로 차용하여 사물들에게 인간처럼 생명이 있는 듯 대하는 의인화적 접근방식은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애니메이션의 어원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그만의 요리법으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의 반찬들은 일품격이다. 중견작가 군으로 분류되는 그의 지난 작가적 삶 속에서 피부로 느낀 혹은 관조자의 입장이었을 여러 상황들 속에서 사적 존재인 개인과 공적 존재인 사회, 혹은 제도, 교육이라는 개념들을 이미지와 텍스트화하는 형식적 방식은 그 무엇보다 재치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전시장의 흰색 벽을 차지한 드로잉평면작업, 비교적 작은 규모의 미디어작품들, 설치작업이 주를 이루는 김범의 작품들은 작품 관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현대미술관객들에게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를테면, 달리는 말 위에 사람이 아닌 말 이 올라타있고, 나무 위에 새처럼 올라가있는 돌, 그리고 이 돌에게 자신이 새라고 교육하는 선생님, 그리고 학생이 아닌 다리미, 벌레퇴치약, 선풍기 등 사물들이 의자 위에 앉아 수업을 듣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전형적인 교실 안은 관객에게 유머를 주며 작품 앞을 쉽게 떠나지 않게 한다. 소박해서 볼거리가 없음을 포착한 우리의 시선은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 사람이 아닌 말을 탄 말을 보게 되고, 새가 아닌 돌을 보게 된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우는 일상사물들은 심지어 애처롭게 여겨지기까지 하다. 의인화와 은유적 수사법을 사용하는 김범의 이 같은 형식적 특징은 인간을 위한 도구로 교육받은 사물들이 곧, ‘도구화된 인간들’로 환원될 수 있음을 직시한다.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보이는 이미지’의 허상과 실상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안내하는 그의 문제제기법은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가 무엇일지 고민하게 한다.
김범_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A Rock That Was Taught It Was a Bird_2010_돌, 나무, 나무 탁자, 12인치 평면모니터에1채널 비디오_87min 30sec_가변크기
애니메이션 수사학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을 일컬어 “소귀에 경읽기”라는 속담을 쓰곤 한다. 소가 사람의 말 을 알아듣겠는가마는 그런데 김범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는 무언가 다르다. 사람처럼 소를 몰고 가며 밭을 간다. 이렇게 김범의 작품 속에 주소재로 등장하는 말, 소, 새, 등 동물들과 일상의 사물들이 사람처럼 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은 정지된 사물에 움직임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는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싱글채널비디오아트 작업인 <생명을 잃은 사물들>은 마치 동물들이 부패되어 죽어가는 모습처럼 시계, 폭탄 등 일반 사물 들의 외형이 변화되어 가는 장면을 포착한 물활론적 시각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작업이다. 사물을 이용한 오브제 애니메이션 영상작품으로 분류 가능한 2008년 작 <생명을 잃은 사물들>을 비롯해 드로잉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작업 <10개의 움직이는 그림들><말타는 말><꽃>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상작업을 선보였다. 2007년 작 <10개의 움직이는 그림들>은 90년대 초반작업인 <26개의 제목 없는 그림들>의 연작으로 3분 10초의 싱글채널로 된 드로잉애니메이션작품이다. <26개의 제목 없는 그림들> 의 평면드로잉을 애니메이션화 한 것이 <10개의 움직이는 그림들>로, 대상들의 입장과 관계, 존재의 어려움, 불확실성, 폭력, 냉소 등과 같은 개인적이거나 인간보편적 갈등과 불안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연필드로잉에 움직임을 부여한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사람이 아닌 소가 밭을 갈고 있는가 하면, 생각이 현실화되어 내 머리 속에서 총을 겨누는 사람이 나의 머리를 실제 쏘는 것처럼 여겨져 총을 피하는 행동을 한다. 숟가락은 곧 날개가 달린 새로 변신하기도 하며, 십자가로도 변한다. <말 타는 말>은 동종간의 주종관계를 통한 ‘관계’가 지니는 부조리성을 고발하는 <볼거리>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며 사람이 아닌 말을 타는 말을 드로잉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형식적으로 <라이온 킹><판타지아>류의 동물을 소재로 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서나 봄직한 동물을 소재로 차용하여 양육강식의 세계, 인간 존재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고발하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애니메이션영상을 구현한 것과 유사하게 ‘교육된 사물들’ 이라는 다큐멘터리영상작업 시리즈인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운 사물들> 또한 의인화적 방식을 차용한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직교사들이 학생을 대신한 돌, 배, 사물들에게 교육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명장면이다. 2010년 작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은 정지용의 시를 설명하는 교육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월북설로 인해 금기시되었던 그의 시를 읽어주는 행위를 12시간이상 지속한 영상물이다. ‘물먹은 별이 반짝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는 구절은 정지용 시의 유명한 구절이지…’ 라며 돌에게 마치 학생을 대하듯 설명하는 선생님의 연기는 가히 너무도 천연덕스러워 보일 정도다. 이 작품의 분량이 무려 12 시간을 넘는 점은 사실 관객들이 끝까지 앉아서 감상하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그의 애니메이션작업은 실상 그가 평면작업에서 실행하고 추구해온 물활론적 작업방식을,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좀 더 수월한 영상작업으로 전환한 것에 다름아니다. 움직이는 이미지를 관람할 때와 평면의 일련의 이미지를 우리의 눈이 따라가며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에는 감상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자보다 정지된 이미지의 힘이 크고, 정지된 이미지보다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전달력이 관객에게 더 큰 호소력을 지니곤 한다. 회화작업에 기반한 초기의 사물의인화 작업은 애니메이션과 12시간을 넘는 장편다큐멘터리와 같은 ‘움직이는 이미지로서의 영상’작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표현의 확장을 위한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실험성과 더욱이 12시간이 넘는 교육장면을 카메라에 잡아내는 작가적 고집스러움 속에서 그가 대중에게 전달하고픈 강력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유추가능하게 한다. 김범_말 타는 말 (머이브리지에 의한) Horse Riding Horse (After Eadweard Muybridge)_2008_1채널 비디오_24초
Power Game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운 사물들>처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된 사물들시 리즈를 비롯해 그가 작품제목에 사용한 ‘노예열쇠고리’,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 그 리고 정상정인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영양을 쫒는 치타의 모습을 편집하여 역으로 ‘영양에게 쭞기는 치타’의 입장으로 전환시킨 비정상적인 ‘동물의 왕국’을 묘사한 <볼거리> 영상작업 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기 그지없는 볼거리가 많지 않은 작품들의 외형과는 다르게 실제 우 리의 삶 속에서 간과되어가는 것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의 제도들, 인식들을 블 랙유머로 재현하는 작가 김범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강력하다. 김범이 표현한 작품의 세계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비정상적인 삐뚤게 바라보는 이미지의 왜 곡 속에는 무엇보다도 우리 삶을 지배하는 무수한 ‘권력’들, 즉 눈에 보이는 거대한 정치권력을 비롯해, 인간사이의 사소한 미시권력, 혹은 ‘타자화시키는 권력’, 주종관계의 권력 등을 읽어내게 한다. ‘보는 것’이라는 지각의 문제를 시작점으로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배려를 제안하는 김범의 예술적 발언은 자극적이지만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명쾌한 세상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다.
그의 이 같은 작품전개방식은 ‘앎과 권력’의 문제에 천착해온 미셀 푸코의 분석을 되돌아보게 한다. 신학적, 의학적, 법률적 자료들을 토대로 19세기 ‘비정상인들’로 불리웠던 위험한 개인들의 문제에 접근, 분석한 미셀 푸코는 권력이 장애인, 정신병자들을 비롯해 타자들을 감금하고 비정상화하는 제도들을 비판하며 개인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자신의 저서 <비정상인들>에서 16세기 왕실권력을 비판하며 당시 왕을 가리켜 ‘원시사회의 호랑이’로 간주하며 최초의 사회주변을 배회하는 야수로 변한 사냥꾼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권력 행사를 위한 다양한 국가기관들이 정착된 19세기에는 어린이관리, 광인관리, 빈민층관리, 노동자관리라는 용어가 등장하여 ‘관리기술’이 발달하였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역사 속에서 실상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비정상인들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온 사례들의 분석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나와 다른 타자들이 규율권력 등에 의해 사회에서 소외당해 온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하며, 인간 존재 그 자체의 존귀함을 자각해보자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규범화되고 획일화되어간다. 특히 입시제도의 과열 속에서 사교육열풍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갈수 없다는 이 시대의 ‘괴물’을 양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성보다는 지식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제도 속에서 나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는 배려심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한국사회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과거 이민의 역사에서 타인종, ‘타자’라는 이유로 소외당해왔던 우리의 역사를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타자로서 소외받던 억압의 기억은 한국을 찾은 이방인에게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말타는 말>이 묘사한 주종관계의 부조리라는 메시지가 실소만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미셀 푸코의 지적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거대권력의 지배체제를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관리대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김범의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고 배운 사물들>에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사물들의 모습, 자신이 새라고 배우는 돌의 모습, 바다가 없다고 배우는 배의 모습에 아이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그래서 씁쓸하고 애잔함을 남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규율, 양육강식의 세계는 그러나 ‘영양보다 힘센 치타가 역으로 영양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어 달리는’ 김범의 <볼거리>처럼, 규율, 제도, 곧 권력이 ‘역습을 당하는 스펙터클’의 내러티브가 펼쳐지는, 또 다른 가능성과 긍정의 힘이 샘솟는 일탈적 장소가 될수 있음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