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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Gentle Journey_Inkjet Print_64x43cm_2009


장보윤은 사람들이 더 이상 살고 있지 않는 빈 집과 옷가지, 수저, 약통 등 그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통해 그들(빈 공간과 물건의 주인)의 과거를 떠올린다. 누군가의 과거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과 사물들을 마주하고 그것을 통해 주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즉 어떤 과거의 경험들과 기억들을 갖고 있을지를 유추하고 상상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장보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개인적인 과거 경험들을 연상하며 일상의 삶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현재는 과거를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지만, 그 누구도 현재의 시점에서 완벽하게 과거의 어느 시간을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기억 또한 현재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감하여 만들어낸, 가공물이 첨가된 조작된 기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기억이라는 것이 현재에는 존재할 수 없기에,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하는 것들의 존재 자체가 점점 흐려지고 잊혀져 가기에 어쩌면 기억을 상기시켜줄 만한 그 무엇이 장보윤에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과거의 시간들을 되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은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우연히 빈 집과 그 안의 사물들, 그리고 새로운 공간이 곧 들어설 공사현장 주변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만나게 되면서 장보윤의 작업은 시작된다.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는 2008년 11월 장보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용인의 어느 집 공사현장의 흙더미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가 버린 35mm 슬라이드 필름 뭉텅이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각기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명이 명시되어 있는 필름들은 1968년부터 1979년까지의 기간 동안 찍은 슬라이드 필름 약 400컷이 담긴 뭉치였다. 장보윤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만나본 적도 없는, 구체적인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당시 나이로 40대라 추정되는) K라는 남자가 남긴 사진 속에서 그의 과거를 보게 되고 그 안에서 K와의 공감대를 발견한다. 사진들은 K가 거쳐간 장소들과 만난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본 유람기록이었고, 장보윤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사진이미지가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사진과 사진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을 법한 무언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K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그의 여행기를 장보윤 자신의 언어로 다시 써나가며 K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메꾸어 나가는 작업을 시작한다.

장보윤 Gentle Journey_Inkjet Print_64x43cm_2009

Brainfactory_ Memory as a Location_ 2009

7월7일 K로부터의 서신 _ 팩스 용지에 이미지_ 가변크기_2009


주운 슬라이드 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장보윤은 의도적으로 주인공 K와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을 지우고 장소가 되는 배경만을 남겨둔다. 애초에 필름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쓸고 부식이 되어 완전한 이미지 식별이 불가능했기에 슬라이드 위에 적혀있는 날짜와 장소에 대한 간략한 메모를 유일한 단서로 삼아 K가 거쳐갔던 그 장소들과 실재했던 시간에 주목한다. 등장인물들을 지움으로써 유추 가능한 정황 또는 인과적인 사건들의 단서가 모두 사라지고 어느 한적한 교외의 이미지들이 남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시선이 꽂히는 사진 속 인물들이 빠진 배경은 다소 생경하지만 흔한 교외풍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곳은 이제 날짜와 장소를 지칭하는 몇 개의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추상화된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한다.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을 산 K와 장보윤의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간극이 존재하기에, 그 사이의 시공감을 좁혀나가고 K와 장보윤 사이의 서정적 공감대를 보다 생생히 감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K가 사진에 담았던 그 순가에 실재했던 공간이 장보윤의 개입으로 재형성되어 이질적 모습으로 바뀌었듯, K가 당시 그 장소들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의 레이어들은 장보윤의 손을 거치며 가공되어 장보윤의 감성으로 재탄생 한다.

            " 시나노 강 상류와 하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오갑니다. 강 남단과 북단으로 많은 이들이 생계를 꾸려나갑니다. 오늘 나는 시나노 강을 따라 무거운 노를 자기의 키보다 몇 배 커 보이는 노로 묵묵히 노를 져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의 주름은 나의 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군요. 시나노 강 상류 쪽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노파, 그리고 사랑에 빠진 듯 행복해 보이는 여인. 그 여인은 내 고향에서 사랑에 미쳐 목을 맨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옆에서 계속 걷는 당신의 얼굴 속에서 이곳 어린아이의 눈빛을 새겨 넣어 봅니다…….중략…….아마도 나는 새로이 만나는 이들에 내가 알던 이들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의 가면을 씌우며 옛 사람들을 기억하고 형상을 새기게 될 것입니다. 노를 져는 노인의 주름과 나의 아버지의 주름, 끊임없이 깜박이는 눈 속에서 나는 다시 나의 아버지를 새깁니다. 

시나노 강에서 1978년 7월 15일 "

K's Room_Mixed Media_ Flexible Size_ 2009

매일 밤_ 비닐위에 아크릴_ 21x29_ 2009 Every Night_ Mixed Media_ Flexible Size_ 2009


1978년 7월 15일 K가 시나노 강가에서 느낀 서정들이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기억의 서1(죽은 자들)>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부분적으로 글자가 흐릿하게 지워지고 검은 잉크가 번진 채 장보윤에게 팩스로 도착하였다. 누렇게 색 바랜 팩스서신은 4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이제서야 장보윤의 손에 막 도달한 듯, 허구라는 탈을 쓴 실재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K가 팩스로, 또는 엽서나 편지로 장보윤에게 보낸 텍스트들은 슬라이드 필름의 이미지들이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시공간의 간극들을 메워나가며 무심히 드러나는 비연속적 시각 이미지의 단편들을 섬세하게 보충한다. K라는 타인의 경험과 기억들이 장보윤의 경험과 기억을 이끌어내는 단서가 되고,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둘 사이의 접점을 발견해나가며 상대의 기억을 통해 다른 이의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장보윤의 작업이다. 과거 어느 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더라도 그 기억 속의 이미지나 인물들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버려진 사진 속에 등장하는 강과 나무, 태양의 풍경들을 바라봄으로써 그 기억들은 끄집어내지고 존재감이 드러난다. 오래된 명화들을 복원하는 복원가의 섬세한 손길을 통해 최대한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의 색과 느낌이 살아나듯, 필름 속 이미지들 너머 타인의 기억들에 하나하나 숨을 불어 넣어 되살리려는 장보윤의 작업과정은 단지 누군가의 기억 끄집어내기가 아니라 장보윤 자신을 포함한 우리 개개인의 기억 되살리기이다. 한 무더기의 필름뭉치들이 비록 K에게는 의미를 상실한 버려진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의 기억의 단상들은 장보윤에 의해 소멸, 생성, 조립이라는 단계를 거쳐 다시 태어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그가 거쳐간 여행길에 동행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손유정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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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윤 (Jang, Bo Yun)

www.jangboyun.com
bluelood35@gmail.com

1981 년 서울 출생
200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대학원 수료
2007  서울여자 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시각디자인 부전공

개인전

2009.9 < 기억의 서 : K 의 슬라이드 > 브레인 팩토리 , 서울
2009.5 <Un-vanished Memory> 서울대학교 우석홀 , 서울

단체전

2009 <Real vs Unreal>, 갤러리 룩스 , 서울 
       < 이인이각 >, 샘표 스페이스 , 경기도 이천 
       <Lightless Light>, 아이엠아트 , 서울

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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