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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왔다. 여기에서 말하는 발전이라는 의미는 현재진행형으로 무엇보다 모노크롬일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전통적 소재,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활용매체를 이용한 작품의 질적 성장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적 성장을 유도한 견인차역할을 한 이들, 신진작가들이 존재한다. 80년대 이후와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진 한국 미술의 위상은 국제 미술시장에서도 선전을 하고 있다. 물론 그 미술시장이 한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것처럼 비쳐지는 현재의 단면은 비평적인 견지에서 논의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몇 년 전부터 해외미술시장에서 젊은 작가들이 인기를 끌자, 미술시장을 이끄는 흔한 말로 돈이 될법한 작가들을 선점하기 위해 상업갤러리는 중견작가대신 젊은 작가들과 전속 계약을 맺는 전략적 변화를 꾀하기까지 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는 그간 찬밥신세였던 젊은 작가들에게는 호재인 것이다. 이른바 선배들은 90년대 말만 해도, 나이 40에도 갤러리에서 개인전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 시대였으니 말이다. 물론 갤러리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이러한 변화는 비상업적 공간인 학교는 물론, 미술잡지, 신문사까지 젊은 작가 사냥에 나서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설적인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논리에 한국 현대미술이 점령당하고 있다고 말할 만 한 것이다. 일견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가는 물론 더 나아가 공공미술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등장처럼, 대중에게 예술이 침투하는 긍정적 상황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미학적 성과로 논의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부정적 측면을 뒤로 하고 이러한 젊은 작가군의 등장에 주목해보면, 그 작품의 질적 성장에 씨앗을 내린 주체인 유학 후 귀국한 소위 해외파작가들의 등장을 볼 수 있다. 서구의 질적 수준이 높은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작업하는 작가들의 양적 증가는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역으로 그 수는 많지 않지만, 한국 현대미술발전의 한 요인으로 해석가능한 한국을 모국으로 둔 작가들이 해외에서 성장하여 역으로 한국에 돌아와 작업하는 상황이다. 그들 중 재미교포 작가 데비 한은 국내에 돌아와 작업하는 작가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학적 위치에서 논의되어야 할 좋을 사례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

어린 시절 미국으로 가족 이민후 2003년 영은미술관 레지던스로 국내에 체류하기 시작한 데비 한은 다문화사회, 다인종도시로 대표되는 LA와 뉴욕에서 수학 후 대학원 졸업시기 9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업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에 오기 전 작가로서 활동을 내딛은 2001년 이후 2003년 그녀의 대표적 작업은 콘돔시리즈로 한국 사회에서는 정서적으로 발언이 금기시되던 기표였다. 콘돔이라는 매체를 활용하기 이전에는 머리카락을 이용한 캔디작업을 하기도 했다. 마늘을 이용해 목걸이를 만들어 모델에게 채워준 후 세련되게 사진으로 기록화하는 방식처럼, 한국에서 사용한 재료의 다양성 또한 마늘, 파와 같은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재료를 다루는 그녀만의 매체활용의 정교한 사례로 보여진다. 이는 60년대 이후 전지구적 현상이 되어버린 개념미술의 유행만큼이나 현대미술영역에서 다양한 매체의 활용이 작가들의 필수무기여야 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같은 유행과 다르지 않게 다양한 매체를 이용할 줄 아는 그녀의 작업태도의 단초에는 일관된 한 가지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즉 그녀 작업의 형식을 완성하는 내용적 측면으로 미국과 다른 한국의 미술교육제도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청자작업의 단초가, 낯선 한국문화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문화가 낯선 그녀에게 한국의 사회문화 일반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미국사회에서 사춘기시절 느꼈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돈처럼, 그녀는 낯선 한국에서 다시 자신 혹은 작품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한국 미술의 발전에 또 다른 요인이라 할 레지던스프로그램이 국내에 기획되기 시작한지 몇해 되지 않은 차에 그녀는 한국을 찾았고 한국미술계에 발빠르게 적응하며 이를 계기로 국내에 머물게 된다. 2004년 쌈지레지던스를 하며 그녀는 홍대앞에 즐비한 주입식 미술교육제도의 상징, 한국 미술교육의 산실을 경험했다. 똑같은 입시교육을 받고 있는 창조성과는 별개의 입시교육학원은 그녀에게는 별천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대다수의 한국 작가들에게 이러한 홍대앞 문화는 그저 일상의 풍경이다.


홍대앞은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대다수에겐 일상적인 풍경이 누군가에겐 커다란 자극제가 된 것이다. 그녀는 입시학원생들이 즐겨다루는 아그리파와 같은 온갖 석고상들을 그리다 남은 지우개잔여물들을 모아서 흰색 종이위에 아그리파형상을 따라 그대로 붙여나갔다. 한국출신의 작가였다면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지우개 찌꺼지가 미술재료로 쓰인 것은 버려질 물건을 재료로 차용한 그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멀리서보면 그저 평범한 연필드로잉처럼 보이던 그림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께를 갖고 있는 지우게 찌꺼기로 드러나는 일종의 친환경 재생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품의 형식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한 예로 간주된다. 흑색의 연필심이 묻어난 지우개는 회색에 가까운 톤으로 그 자체로 색조를 유지하여 페인팅의 효과를 자아낸다.

석고상이라는 소재는 그녀의 사진작업에서도 이어지는데, 이후 사진이라는 신매체는 그녀의 주된 재료이자 작업으로 부상한다. 한국에서는 일상적 풍경이었던 70-80년대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교 졸업식 단체사진에 아그리파얼굴을 몽타주하여 팝아트적 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다양한 각도의 조금은 어색한 아그리파얼굴에 표정을 변화시켜 만든 작업과 유사시리즈로 미스코리아들의 얼굴에 비너스석고상의 얼굴을 몽타주한 작업은 그녀가 한국 문화, 사회전반을 창작의 소재로 차용한 후 이를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재구성한 지극히 현대미술적인 몽타주방식이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아그리파석고상이나 졸업식 사진을 이용하는 방식이 만약 국내 작가의 것이었다면 관심을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이는 너무도 익숙한 소재였기에 우리 문화안에서는 문제의식을 발아시키기에는 영향력이 미약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의, 재미교포의 눈에 비친 한국 문화는 낯선 것이기에 작가적 입장에 대한 소통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그녀는 <Agripa's Class>와 같은 사진작업 외에 그녀 작업의 대표적 매체가 된 청자를 활용한 <전지전능한 일상의 얼굴들>을 선보인다. <전지전능한 일상의 얼굴들>은 일련의 청자비너스로 하나의 틀을 이용해 굽기 전 입부분만을 성형하여 완성하는 방식으로 서구적 기준의 미인으로 인식되는 비너스의 입술이 찌그러지게 표현한 입체작품이다. 기존의 전통을 해체하고 짜깁기하는 몽타주방식이라 할 그녀작업은 다분히 언더그라운드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도자기, 청자를 현대미술에 차용해 한국 고유의 문화를 비틀고, 문화제국주의가 만연한 서구의 인식체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 Debbie Han, "Two Graces II," 2008,>


청자
, 날개를 날다: 한국의 전통 도자기문화의 현대미술적 차용 

개인전이후 그녀는 사진청자작업에 매진한다. 그녀가 한국문화를 낯선 것이자 이상함이라고 표현했던, 입시미술학원, 여성의 미의식 등 사회 제도와 규범에 의문을 품은 2004<이상화된 이상함>전시이후 2009<Hybrid Graces>전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몽타주방식을 더욱 세심하게 대형 사진작업으로 이상화시킨다. 그녀작업의 문제의식의 단초가 되어준 한국인의 이상한 미의식과 입시교육제도는 서구미인의 전형적인 얼굴에 한국인의 일반적인 몸, 뚱뚱하고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온 일상적인 아줌마의 외형을 짜깁기한다. 백화점에 가면 단정히 인사하는 안내원들이 즐비한 한국적 문화풍토를 재현하기위해 그들의 옷을 벗기고 누드로 비너스석고상의 얼굴과 짜깁기한다. 배경의 블랙처리는 마치 사진작업들이 하나의 석고상과 같은 생명력이 없어보이는 혹은 옛날 여자아이들이 갖고 놀던 인형스티커들처럼 정지한 느낌을 주는 단점도 있다. 이 몽타주를 위해 작가는 물론 디지털 컴퓨터를 이용해 머리와 몸통을 지연스럽게 이어야하는 난이도 높은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2006년 미의 조건이라는 주제의 개인전이후 그녀의 작업은 <미의 조건시리즈> (2004-2010)로 불리운다. 2008년에는 스포츠비너스라는 주제로 비너스얼굴에 나전칠기기법을 이용해 극도의 노동의 과정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수천년전의 공예기법인 나전칠기기법을 이용한 그녀는 비너스얼굴위에 축구공에 쓰이는 육각형 모양을 얼굴위에 수놓는다. 미식축구공의 실밥을 표현해 동양과 서구라는 하이브리드를 재현한 것이다. 물론 이미 그녀 작업의 괘는 스포츠비너스뿐만 아니라 전작에서, 서구에서 들어온 미의식, 일본에서 해방 후 유입된 입시제도등 서구의 문화제국주의의 산물이라 할 문화, 제도들을 동양과 서구라는 이중의 틀로 바라보게 하는 하이브리드 몽타주를 시도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Debbie Han, Sport Venus II, 2008>


<인식의 눈>이라는 제목의 2010년 신작전시에서는 하이브리드 몽타주의 절정을 보인다. 비너스의 얼굴에 아프리카인의 입술, 유대인의 코, 동양인의 사각턱이 모두 모여 하나의 얼굴형상을 이룬다. 석고상태의 비너스를 만들어 하나 하나 사진을 찍어 기록한 뒤 이를 최대 4장까지 이미지레이어링을 통해 즉 합성을 통해 하나의 얼굴로 완성하는 사진기법이다. 그러나 이 한 얼굴은 이미지들의 층들이 드러나며 착시현상처럼 대체 누구의 얼굴인지 분간할 수 없게 한다. 두꺼운 입술과 매부리코, 비너스의 형상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의 기록이라는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용해 입체작품으로 탄생하기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그 노동의 창작과정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배어있다. 이번 신작에서는 3년여에 걸쳐 시도한 새로운 매체실험의 결과물도 내놓았다. 데비 한은 고난이도의 작업과정을 요하는 신작 백자작업을 통해 기존에 선보인 아시아인과 서구 비너스의 몽타주를 활용한 방식을 넘어 아프리카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의 얼굴을 백자에 재현하였다. 이는 앞으로 그녀작업의 또 다른 시리즈가 나올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7년간의 작업과정을 담은 영문도록을 출판하기도 한 데비 한은 올초 아시아작가들에게 수여하는 홍콩 소버린예술재단 아시아작가상을 받았다. 비너스얼굴에 한국 아줌마들의 퉁퉁한 몸을 몽타주시킨 작품 <좌삼미인>(2009)이라는 사진작업이 선정된 것이다. 비너스얼굴을 한 아줌마 셋이 앉아서 수다를 떠는 광경은 어찌보면 코믹한 광경이다. 목욕탕에 가면 흔히 볼 수있는 이 일상적인 풍경은 그러나 데비 한의 사진 속에서 세련된 기법을 통해 촌스럽지 않은 자태를 취한다.

데비 한의 하이브리드 몽타주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넓게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중심의 인식체계, 미의식을 통해 본 문화제국주의의 현재적 자화상일지 모른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가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와 시스템 속에서 서구 교육을 받은 데비한은 그 자신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의 혼돈 속에서 살아온 세대로 모국의 동양적 소재들을 차용하여 역으로 세계화에 애쓰고 있는 작가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인에겐 일상적 풍경들을 소재화하는 아이디어채집의 장점은 코리안 아메리칸이기에 수용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듯, 백남준이 60년대에 한국에 살았더라면 비디오아트 창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처럼, 나는 데비 한이 미국에서 작업했다면 지금의 작업적 성과를 낼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이를 말하는 것은 200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의 변화 속에서 그녀는 어쩌면 운좋은 시절을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작가의 노력으로 되지는 않을 터, 그녀의 노정처럼, 즉 미국에서 이방인의 신분으로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흔히들 말하듯 아메리칸드림인 것처럼, 그녀는 다문화시대로 성장하는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미술작가로 한국을 찾은 수많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이주노동자를 돌아보게 한다. 그녀는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작가로서, 이민자의 신분으로 고국을 떠났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고국에서 역으로, 해외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 역할을 한 원동력에 바로 한국이 존재함에 남다른 감사함을 지닐 것이다. 여행자로 방문한 고국에서 그녀는 이제 배우자를 만나 한국에 정착했고 다문화시대에 걸맞는 유목민 이주노동자에 속하는 작가로서 코리안드림이 실현될지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게 한다.

                                                                                                                 <IA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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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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