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림이나 텍스트를 통해 사건이나 행위를 기억해 왔고, 그 중에서 선별된 것들이 역사적 기억들을 구성해온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이전의 시대와 역사시대를 텍스트적 기록이 존재했었는가 아닌가를 통해 구분한다. 기록은 인간의 기억을 확장시킬 뿐만이 아니라 삶의 내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런 확장적인 기억의 가장 대표적인 생산물인 텍스트는 21세기 뉴미디어 시대 이전까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예술과 문화의 정신적 구조틀을 구축해온 상부구조(superstructure)라고 말할 수 있다.
강애란은 텍스트의 역사에 또 다른 인간 문명의 대표적인 수단인 빛을 결합시킨다. 일반적으로 빛은 불이라고 하는 물질적인 존재성을 지닌 매체로부터 진화해왔고, 불 혹은 빛은 좀 더 보편적으로 인간 문명의 근본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빛은 기술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런 면에서 강애란의 ‘디지털 북’은 문명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론적인 조건을 반영하는 속성을 지닌 매체가 된다.
강애란의 ‘디지털 북’은 책의 모양을 지닌 ‘빛 상자’라는 물질적인 성격과 이미지를 통해 책의 내용이 전달된다는 면에서 디지털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는 강애란이 텍스트적인 기억과 이미지적인 기억을 자신의 작품에서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것들이 미디어 아트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각되는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애란은 자신의 작품 ‘디지털 북’ 에서 텍스트적 구조와 이미지적 구조가 공존하는 감각코드를 개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서 특별히 까다로운 기술적 매체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매체는 그녀의 작품에서 자신의 예술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구현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은 그녀 작품의 내용적 단서들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기술을 텍스트라는 서사의 분위기 속에서 텍스트적인 진화의 측면으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1]
강애란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자신들 삶으로 행복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인간적 서사(narrative)를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고, ‘디지털 북’은 그녀가 포기하지 않은 삶의 아날로그적인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미디어적인 가상성(virtuality)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가지고 있는 현실(reality)의 아날로그적인 차원을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미디어 아트가 시간적인 예술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강애란의 작품에서는 ‘공간적인 의식’과 ‘체험의 공간’이 시간성의 외부에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의식 속에는 공간에서의 사유와 시간 속에서의 운동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강애란의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 기술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들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의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작품에 관한 자신의 기준과 관점을 사유(근대)와 운동(현대)이 교차되고 있는 문화적 상황의 접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2]
강애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문명의 장치들(vehicles)이 삶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언제나 인간 삶의 중심에는 물질적 존재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강애란의 작품에서 예술적 차원과 인간적 차원은 화해나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진리나 현실의 차원과 관계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Note>
1. 정용도, 「감각적 체험의 공간과 숭고의 시뮬라시옹」, 『월간미술』, 2009년 7월호
2. 정용도, 같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