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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수_New World_Lenticular_100x60cm_2008>

민족지ethnography1_ 현대미술, 대중문화를 접수하다.

어린 시절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아니메,anime)을 한국 것 인냥 즐겨보고 자라온 세대다. 엔터테인먼트라고는 TV가 전부였던 시대에 흔히들 만화라 부르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임을 알게 되면서 이는 나와 동시대인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 되었다. 80년대 비디오테이프시대가 등장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놀라운 전파력을 경험할 수 있었고, 90년대 말 일본문화 개방전 그야말로 한국은 음성적인 아니메팬들, 오타쿠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저급문화로 대하던 한국이라는 민족지적 특색은 문화 불모지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혹은 소규모 오타쿠들이 아니메를 즐기는 사이 새로운 민주정권의 시대, 김대중 정부에 의해 일본문화개방이 현실화되면서 국내에 일본문화는 물밑듯 밀려왔고 그 중심에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문화콘텐츠 육성정책에 맞추어 대중문화로서의 만화, 애니메이션은 고급의 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부어 애니메이션관련학과를 만들고 콘텐츠제작에 투자사들이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뭔가 될 듯 한 분위기, 소위 한방이라는 말처럼, 일본의 포켓몬이 세계시장에서 킬러콘텐츠로 부상하자 우리 정부도 그 뒤를 쫒으려했다. 그러나 엄청난 재원은 실질적인 현장에 투자되기보다는 나눠주기식 지원하에 될성부른 작품 하나 건지지 못했다. 이것이 2000년대 초반의 한국의 민족지적 문화흐름이다.

이미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제작의 그 작품의 퀄리티와 제작노하우를 보유하지 못한 한국은 엄청난 재원에도 불구하고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소위 하청(OEM)이라는 구조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길이 아닌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광고 영화 등 유사 영상업계의 비전문가들이 기획을 하고 재원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며 새로운 문화콘텐츠발굴에 실패한 주요한 원인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문화콘텐츠산업시대로 진입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한국의 현대미술계에도 그 영향력을 미치며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미술관, 갤러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1997년 아니메세대인 이불이 <사이보그>라는 작품으로 베니스베엔날레 전시를 하던 즈음 일본의 모리 마리코, 무라카미 타카시가 일본의 네오팝, 슈퍼플랫을 미국 미술시장에 알리며 선전하기 시작한다.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이같은 분위기는 그들이 어려서부터 보아온 익숙한 민족지적 이미지,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들이 그들의 시대정신의 초석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불은 아니메의 단골메뉴인 몸이 찢겨지고 해체되는 사이보그 이중 여성사이보그에 관심을 두며 분해된 잘려진 신체에 주목한다. 더불어 더너 하러웨이의 사이보그이론에 영향 받은 이불은 자신에게 각인된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 시대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가 제작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이 몸과 정신에 대한 철학적 담론들을 양산하며 영화 <매트릭스>에 차용되는 문화전용의 사례들도 이불이 작업하던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소위 한국 팝아트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계보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홍익대출신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90년대 말에 시작된 이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속에서 다양한 전시 작가들이 등장했고 이동기와 동시대작가로 권기수가 그 이름을 알린 건 동구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다. 어찌 보면 권기수는 문화산업의 형세를 인지하고 독자적인 마케팅에도 남다른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작가로 비쳐진다.

권기수가 캐릭터라는 새로운 주제를 끌어든 시대적 배경에는 캐릭터산업의 등장이라는 문화콘텐츠산업이 위치한다.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황금알을 낳을 거라며 즉 해외에 수출하여 엄청난 이득을 볼 것이라던 정책입안자들의 산업기대효과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 국내 캐릭터산업은 그 틈새를 비집고 날로 성장하였다. 대표적으로 마시마로, 뽀로로, 뿌카 등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대한 정책적 관심에 밀렸던 과거에 비하면 오늘날 해외에서의 선전은 그 매래를 담보한다.

이렇게 문화콘텐츠산업현장과 대중문화 팝아트를 연관지어 논하는 것은 대중문화가 현대미술에 유입되기 어려웠던 과거 한국의 보수적 미술계에 변화를 몰고 온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시장의 급성장속에서 팝아트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고 성공하자 국내미술계에 팝아트는 코리안팝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고유장르로 인식되고 있고, 권기수는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권기수 _ Blow off-meditation_C-Print ,Mounted on Plexiglas_150x90cm_2008>

    
민족지
ethnography 2_한국의 민족지적 캐릭터 동구리’, 동양화에 날개를 날다.

21세기를 창조융합의 시대라 말한다. 창조경영은 물론 창의인성교육이 한국의 문화예술정책에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다.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알려진 권기수는 바로 창조적 발상, 창조융합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 그에겐 어쩌면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시대의 변화가 그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게 된 배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예술 접근의 용이해짐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다면 이제 고민할 것은 이들의 미학적 의미들을 탐색하는 과정, 비평적 담론들을 어떻게 생산해내느냐의 문제다.

코리안 팝을 대표하는 이동기의 캐릭터는 일본과 미국문화가 합성된 아토마우스로 요약된다. 이는 우리 역사와 맞닿아있는 민족지적 주제이기도 하다. 50년대 영국에서 발아한 팝아트가 미술사의 장르로 철옹성이 되었듯 한국에서 그 팝아트의 재현은 낯설지 않다. 과거 모노크롬과 민중미술이라는 양대산맥 사이의 틈새 속에서 한국 미술의 다양한 이미지의 층위들이 재현되는 것이 작금의 현대미술의 현장이다. 실상 현대미술시장의 팽배 속에서 한국의 전통회화, 한국화 혹은 동양화 전공자들은 그 갈 길을 헤매던 현실이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권기수는 자신의 전공을 현대화하는데 노력했고 동양화를 팝아트와 접속시키기 시작한다.

그는 발빠르게 자신의 캐릭터를 상품화하는데도 성공한다. 열쇠고리로 시작된 그의 작품은 다양한 팬시상품이 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 평면에서 입체, 영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발전은 최근 현대미술작가들이 동양화를 해체하여 재해석하는 현상을 돌아보게 한다. 그 선두에 권기수가 있다.

 
권기수의 해체와 전복: 동양화의 정신을 계승하다.

권기수의 작품에는 항상 동구리매화가 등장한다. 동구리라는 전경이 캐릭터에 매화라는 원경의 무대가 존재한다.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동구리와 매화인 것이다. 눈이 날리는 곳이나 하늘을 날아다닐 때도, 땅에서 거닐 때도 동구리와 매화는 늘상 조화를 이룬다. 사군자 중 추운겨울에 꽃을 피워 강인하고 고결한 성품으로 그윽한 향기를 피우는 것이 매화다. 그는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수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크릴채색을 통해 동양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체한다. 형식의 해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아크릴채색과 수묵화의 과정은 유사하다. 인내의 시간을 통해 완성되는 작업과정은 필수적이다.


                                        <권기수 _ Butterfly Dream_ C-Print ,Mounted on Plexiglas_ 100x130cm_2008>

전통적으로 동양화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그러나 권기수작품은 빼곡한 화면배열을 통해 그 전통을 또다시 해체한다. 강아지, 고양이등 동물들이 등장하던 동양화의 주된 소재주의도 이제 문명화된 비행기를 타는 동구리를 만나기도 하고 디지털이미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소재주의의 변화 즉 형식의 해체는 화선지라는 전통적 매체를 캔버스로 이동한 것이다. 또한 다른 빠질 수없는 부분은 그의 색채실험이다. 색채의 강렬함은 전통적인 오방색을 사용하되 단순화된 형태를 통해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일조한다.

캔버스라는 매체를 넘어서면 동구리와 매화는 디지털프린팅의 복사된 이미지로 떠돌기도 하고 알루미늄, 스틸위에서 노닐다가도 어느새 입체조형물로 변신한다. 그의 형식실험 중 2000년대 초반 플래쉬애니메이션작업은 미디어라는 매체를 차용한 예로서, 그의 미디어작업의 진화는 싱글채널비디오작업으로 단순한 캐릭터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권기수, 스토리텔링 아티스트가 되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의 작업태도는 스토리텔링아티스트에 가깝다. 다양한 매체를 다루되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동구리라는 주인공으로, 즉 권기수는 하나의 캐릭터를 이용해 입체조각, 설치, 디지털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권기수의 동구리작업과정은 유명한 한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1940년대 제작된 디즈니애니메이션 중에 <덤보>라는 제목의 귀가 큰 코끼리이야기가 있다. 서커스단에 들어온 아기코끼리 덤보는 점보주니어라는 이름이 있지만 귀가 남들보다 크다는 이유로 바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조롱받는다. 엄마코끼리에게 사랑받는 덤보는 다른 코끼리들에게 귀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를 당하고 끝내 광대로 전락한 그의 외형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덤보는 우리같은 코끼리가 아니에요라고 말이다. 그러나 쥐돌이의 도움으로 자신이 날 수 있다는 남들과 다른 차이를 알게 된 덤보는 헐리우드의 유명인사가 되어 덤보 캐릭터모양의 비행기로 제조되어,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아트마케팅의 영역까지 도전하는 성공한 주인공이 되어 엄마와 조우하고 하늘을 날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권기수_Square forest- golden wave_Acrylic on Canvas_130X130cm_2008>

내가 덤보를 예로 든 것은, 권기수의 작품을 비롯해 팝아트를 바라보는 현대미술계의 이중적 잣대를 지적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은 급변하고 있다. 그 키워드중 하나는 젊은 작가들의 등장이다. 이 같은 젊어진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동양화는 그 전통의 자리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사실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전공자들의 작품은 인기와는 거리가 먼 장르였다는 것이다.

최근 젊어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동양화의 형식실험에 도전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한국 현대미술의 현실이다. 여기에 오로지 상품성을 보고 달려드는 갤러리들도 있기 마련이고 저널리즘까지 가세하는 풍경이지만, 중국, 일본의 아시아 팝아트의 흐름과 비교해 국내 팝아트의 진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다. 리얼리즘의 정치학을 넘어서고 있는 한국미술계에 초현실주의의 재현, 환상미래주의적 시각 속에서 동양화의 현대적 해체와 전복은 새롭다. 디지털 미디어, 수묵애니메이션과 같은 고도의 인내를 요하는 동시대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매체 실험은 물론이고 변형된 산수화, 조각, 입체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는 양적 성장 속에서 팝아트라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특히 평자들의 고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동양화를 전공한 권기수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 비평적 담론을 생산하기에 모범적인 사례다. 새롭게 오픈한 대한항공 건물의 일우스페이스 윈도우갤러리에는 동구리가 대형벽화처럼 관객을 맞는다. <Sky High>라는 전시모토처럼, 하늘을 나는 덤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이다.

그는 해외아트페어 및 갤러리들에서 끊임없이 전시를 이어가는 성공을 행해 질주하는 신세대 작가다. 평면작업을 위주로 하지만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대형작업들이 증가하고 있고 작업의 성실함 또한 눈여겨 볼 부분이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권기수의 작업은 한국적인 민족지적 특색을 담고 있지만 미래지향적이다. 현대미술과 대중문화가 조우하는 지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현대적 산수화 같다. 그의 작품들의 외형이, 반질반질 빛나는 아크릴물감이 채색된 표면이 전통 동양화와 다르다고 한다면 우리의 시대정신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형식실험이 전통적인 여백의 미를 채워간다면, 동양사상에 바탕을 둔 자유로움, 그것이 권기수가 전하는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여백의 미일지 모른다.

                                                                                                                    <IA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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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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