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과연 한국 애니메이션에 미래는 있을까? 2000년대 초 한국 애니메이션은 죽었다. 모두들 그렇게 말했다. 수십억 규모의 한국 애니메이션 <엘리시움>(Elysium), <원더풀 데이즈>(Wonderful Days)가 시장에서 참패하자 관객들은 더이상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믿지 않았다. 투자자들 역시 새로운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모두 거둬들였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애니메이션 산업을 감싸안은 지 겨우 23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괴상한 토종 애니메이션 한편이 극장에 걸렸다. 2006년도에 개봉한 <아치와 씨팍>이다.



<아치와 씨팍>을 정의하는 건 대체 쉬운일이 아니다. 18() 엽기 하이브리드 포스트모던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러야 할까. 기획부터 개봉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 달려가는 액션 활극이다. 이야기는 더욱 가관이다. 인간의 배설물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미래의 도시. 정부는 유일한 에너지원의 생산을 촉진시키기 위해 중독성 강한 마약 하드를 배설량에 비례해 나누어준다.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 컴퓨터가 그것을 감지하고 전송 장치를 통해 하드를 배설자에게 공급해주는 방식이다. 한편 하드의 부작용으로 배설 능력을 상실한 채 하드만을 약탈하는 보자기 갱단이 생겨나 도시의 근교를 어지럽히고, 전체주의 군사정부는 이들을 잡기위해 합성 인간인 형사 게코를 투입한다. 여기에 주인공인 아치와 씨팍이 있다. 이 양아치 듀오는 공중화장실에서 강탈한 하드를 거래하며 하루하루 먹고 살아간다.

똥을 자원으로 삼는 도시와 하드의 부작용으로 돌연변이가 된 보자기 갱단, 거기에 얽혀드는 하드 밀매 양아치들의 모험담이라니. <아치와 씨팍>은 갑자기 어느 별에서 한국 애니메이션계로 던져보낸 돌연변이 갱단처럼 보일 지경이다. 사실 <아치와 씨팍>의 기획이 시작되었던 10여년 전. 세기말의 문화계를 사로잡은 코드는 키치’(kitch)였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엽기의 유행이 막을 올렸다. 고전적인 대중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의 관습을 파괴하는 문화상품들이 인기를 모았다. <아치와 씨팍>은 그같은 대중문화로부터 수혈을 받아 탄생한 2000년대적 문화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치와 씨팍>의 기술적인 완성도마저 싸구려 키취인 것은 아니라는 걸 언급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오히려 이 작품의 완성도는 35억원의 제작비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유려하다. <아치와 씨팍>은 움직이는 캐릭터마저 3D의 도움을 받아서 창조하는 최근의 애니메이션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일단 모든 배경의 기본 골자는 3D로 만들어졌다. 제작진은 3D로 완성한 배경을 일일이 2D로 색칠작업을 한 뒤, 거기에 맞추어서 2D 캐릭터를 붙여넣었다. 이 무시무시한 수작업의 결과는 더할 나위가 없다. 카메라는 극영화에서처럼 다양한 영화적 앵글로 움직이지만 3D 공간의 인공적인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3D의 도움을 받지 않은 완벽한 2D 캐릭터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정제된 3D 화면의 극영화적인 움직임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숙련된 완성도가 가져다준 선물은 크다
. <아치와 씨팍>이 단순히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엽기적 난장판 영화로 나자빠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작진은 기술적인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장르적인 쾌감을 추진하는 액션장면들을 <아치와 씨팍>의 전면에 내세웠다. 모두 5개의 거대한 액션 스테이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롤러코스터 같은 즐거움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아치와 씨팍>은 이같은 오락적 흥쾌함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고사 상태 직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일단의 패기넘치는 젊은이들이 공들여 만든 독립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은 여전히 한국 애니메이션에 미래가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언젠가 한국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면, <아치와 씨팍>200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다시 평가받게 될게다.

                                                                                                                   <씨네21> 김도훈

신고
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