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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3호 터널을 지나 광화문으로 가는 길, 자동차를 이용해 소격동 일대 전시장을 찾을 때 항상 마주하는 길이 있다. 톨게이트를 나와 차들로 가득찬 사거리를 지나면 고층건물들 사이로 작은 뒷골목처럼 낡은 건물을 사이에 둔 2차선 도로가 나온다. 바로 소공동길이다. 소위 양복점들이 늘어선 이곳은 주위빌딩들에 비하면 비교적 단층건물에 재개발 될 것임을 알리듯, 먼지가 겹겹이 쌓인 건물들이지만 왠지 모를 아늑함이 풍겨오는 곳기도 하다. 신호대기중으로 기다리는 예가 다반사인 이곳에서 나는 양복점들을 살펴보곤 했다. 이곳에 정차하면 자연스레 이들 상점으로 눈을 돌릴 밖에 없다. 이들 외에는 다른 상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근대화된 주변의 한국은행, 조선호텔, 그리고 시청, 대기업건물들과 대조되는 허름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소공로길. 

소공로의 탄생 

작은 공주골이라 불리던 이곳 소공로는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가 살던 곳에서 유래한다. 시집가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집을 지어 결혼선물로 주었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북촌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관들이 싸우는 분쟁의 공간이었던 반면 남촌은 허생과 같은 인물들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던 다소 한적한 곳이었다. 남촌은 훗날 일본인들이 장악하였고 이런 남촌에 소공로길이 생긴 것은 20세기 초 일본이 경성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그 자본력을 앞세워 자신들이 불편한 도시 길을 재편하기 시작하면서다. 광화문과 남대문을 연결하는 직선로를 개설한 데 이어 일본은 남촌과 북촌을 연결하는 대각선도로, 소공로를 개설한 것이다. 역사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그 소용돌이에서 빗겨나지 못했던 공간 소공로는 3.1운동시절 만세행렬이 이곳까지 오자 일본인들에게 위기로 각인되던 곳이기도 하다. 삼일운동기념비가 세워진 시작점과 끝에 한국은행과 시청이 자리한다. 고풍스런 대형 분수대가 이곳 길유독 장식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일본인이 물러간 지금도 여전히 소공로는 그 도로를 유지하지만, 그 길은 원래 조선인들이 다니던 길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인력거를 타며 다니던 그들의 길이었다. 한 세기를 맞는 지금 이 소공로길은 중국, 일본 관광객들의 방문장소가 되었다.

근대의 표상, 양복 그리고 양복점 

 일본인들이 만든 소공로길의 정확한 주소는 소공동 112번지다. 과거 역사적 기억을 간직 한 이곳 소공동길이 <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라는 기획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그 역사를 반추하게 하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 이번 기획은 미술과 국문학을 전공한 젊은 기획자들이 모여 1년간 준비한 프로젝트로 길이 500미터에 달하는 소공로길의 상점들 중 양복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19세기 일본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양복은 개화파지식인들이 처음 그 선을 보였다. 1910년대 양복입은 신사들이 신지식인으로 유행화되던 시기 근대화에 앞장선 이들이 한일합병의 추진세력화되면서 그들이 입은 양복의 이미지는 매국의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기도 했다. 주로 일본인들을 상대로 하는 양복점들이 생겨나면서 소위 1930년대 모던보이, 모던 걸의 논쟁이 가열화되던 시기 양복, 양장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젊은이들, 히 젊은 지식인의 로망처럼 비추어지기도 했다.  



밤이면 주위의 밝은 조명과는 반대로 죽은 건물처럼 빛 하나 없이 어둡기만 이 곳의 세련되 보이 않는 양복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어느 지방 읍내에나 있을법한 소위 구색스타일의 쇼윈도우 인테리어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다닐만한 인도라곤 고작 1m도 안되는 도로에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주변 건물의 직장인들의 보행을 제외하곤 거의 인파라곤 찾아 수 없는 곳이 소공로길이다. 사람다니기에 불편한 길이다보니 사람보다는 차들이 늘상 건물 앞 도로를 가득 메운다. 1층 양복점들을 제외하면 건물들은 간판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처럼 보이지만, 고층빌딩숲 도시속 공원 같은 잔잔한 매력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그 당시에는 홍일점이었던 남자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이 소공로에 자신의 가게를 처음 열고 주위와는 다른 인테리어로 주목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던 이곳 양복점의 역사는 아직도 명장패전시해놓은 가게들에서 알 수 있다. 1950-60년대 영화들 속에 서울거리가 등장할 때면, 양복점이나 양장점들은 영화속 중요한 장소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근대의 표상이기도 했다. 

<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전시와 세미나가 큰 축을 차지하는 공간발굴프로젝트이다. 이외 공연, 워크샵, 연주회, 거리 DJ등 지역커뮤니티를 위한 행사들을 진행한다. 오프닝 당일 백제대학 모델학과 학생들이 참가하여 소공로길을 걷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프로젝트제목이 쓰여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모델 워킹을 하는 풍경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 할 전시는 김상균 진시영 필승 이명호 등이 참여한다. 김상균은 각 양복점에 상패처럼 작은 액자를 만들어 쇼윈도우에 진열한다. 작은 액자는 led가 장착되어 밤이면 별처럼 빛난다. 사진작가 이명호는 빈 상점의 외벽에 흰색 천을 덧대고 이를 배경으로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을 무작위로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주로 거리에서, 상점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그러나 그 행위의 재현을 알수 없게 하는 아쉬움을 준다. 장소는 있으되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다. 기획자는 애초 기획과 달리 상점주인들이 쇼윈도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전시장소를 허락해 것이기에 애로가 있었음을 토로한다. 이 지점은 지역커뮤니티와 소통하고 연계하는 최근 급부상하는 공공미술의 그 진행에 있어서의 어려움과 맞닿아있다. 갤러리의 전시라면 작가의 의도가 배어난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상점이라는 제한된 장소에서의 전시생업과 관련하여 지역주민의 문화적 소통을 요구하기에, 특히 공공미술의 장소가 비결정성의 성격을 띠는 특성상 장소에 거주하는 지역주민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잊혀진 공간의 역사를 발굴하는 기획의도이해시키는 노력 필요하다. 거리에 설치된 배너에 글씨를 넣을 없다는 서울시의 제한 또한 소공로가 재탄생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소공로, 공공미술의 공간 

 공간발굴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이 행사의 중심은 실상 세미나에 있다. 공간의 역사를 반추하기 위한 사전적 이해는 필수이니, 소공로의 탄생, 양복점의 탄생 등에 관한 공간이해에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을 각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정주리는 양복을 통해 근대성과 도시담론을 고찰한다.  

지역축제의 성격을 띤 <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는 목금토일 점심시간대에 지역인들을 위한 무료찻집을 제공한다. 주변의 재활용쓰레기를 이용해 원목이동찻집을 꾸렸다. 찻집을 통해 행인들에게 말을 걸고 커뮤니티와 소통하고자 한 기획이다. 이 찻집을 근거로 소공동 라디오 프로젝트는 DJ 우성희가 점심시간 거리를 활보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라디오방송처럼 진행한다. 이 외 차례의 밴드연주와 바이올린연주도 마련했다. 행사장소도 거리, 양복점, 설렁탕집, 카페 등 전방위적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기획자들의 고민의 흔적들을 수 있다.  

이 <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의 성격은 실상 최근 정부, 지자체 주도의 공공미술의 유행을 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전시에 국한된 제도적 성격을 넘어 축제화되는 미술전시의 형태는 21세기 현대미술의 확장성과 맥을 같이 한다. 90년대 초반 공공미술이라는 새로운 쟝르가 진행되면서, 60년대 이후 기존의 미술의 문맥을 공공미술안에서 확장해보려는 시도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프로젝트가 미술가들의 영역확장을 도모하며 잊혀진 공간의 탐구를 주목하여왔다. 전철, 골목길 동네, 빈 집, 빈 공적 공간 등이 커뮤니티미술공간으로 변모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서울시가 금천, 문래지역 등 서울의 노후한 공간을 창작공간으로 확장하는데 이바지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문광부는 몇 년 전 재래시장활성화를 외치며 대형마트에 밀려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상업지역을 문화로 물들이겠다는 전력을 추진해오고 있다. 문화로 공공장소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소비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국은 지금 공공미술이라는 열풍아래 재개발되고 있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이 제대로 개발된다면, 문화적 소통이 더욱 쉬워질 것은 자명하다. 작가들에게도 다양한 레지던스 공간에서의 창작활동과 전시공간을 넘는 제작의 확대로 작품이 대중과 가까이 하며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시 발생하는 중개상인들의 역할을 하는 기획집단의 독점이나 심사의 투명성이 얼마나 진정성을 획득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설치된 작품들의 다양화와 예술성의 문제 또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물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미술장식품의 경우, 기업형 혹은 일부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어디를 가도 유사한 작품들이 공공의 장소를 차지하는 것은 공공미술의 폐해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공공미술 작품의 예술성을 논하는 잣대를 세우고 심사를 강화시키는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전국 어디를 가도 유사한 작품들 아니 어쩌면 공산품들을 만나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자체의 특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대량생산품의 전시물을 예술로 오독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의 주소, 소공동 112번지>은 이런 점에서 어떤 관주도형식의 공공미술이 아닌, 신선한 젊은 기획자들이 중심이 되어 과거역사를 깊이 있게 읽어보려는 시도로 주목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유행화되는 공공미술의 진정성을 담보 받기 위해선 전시와 같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재현물의 설치에 더욱 공을 들일 필요가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예술과 사회간의 소통을 주제로 하는만큼 이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 하니 다음 행사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본다.  

 

IA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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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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