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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라는 현실

영유아시기에 해당하는 특히 생후 8개월 경에 아이들의 뇌는 폭발적으로 발달하며 모든 것을 흡수한다고 한다. 즉 이 때가 바야흐로 아이들에게 교육이란 걸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말이다. 조기교육에 거부감을 갖는 부모들은 이러한 시기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됐든 생물학적으로 아이는 외부의 지식을 수용할 물리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시기를 대다수의 부모들은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림이 그려진 책을 읽어주는 것은 즉, 이미지가 많고 텍스트가 적은 책을 주기적으로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간이 태어나 최초의 텍스트를 접하게 되는, 교육의 첫 스타트가 되는 그림이 많이 그려진 책들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동화들이 대부분이다. 구연동화책의 경우, 성우처럼 목소리대역을 필요로 하여 실감나게 읽어주라는 안내텍스트를 적어놓기 일반이다. 동화라는 스토리는 어떤 것인가. 비현실적 세계, 판타지의 세계를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아이들이 즐겨보는 유아프로그램 중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는 판타지, 비현실적 세계를 다룬다. 국내에서 역사가 비교적 오래된 흔히 말하는 킬러콘텐츠, 대박애니메이션으로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펭귄과 친구동물들의 일상을 다루는 뽀로로, 냉장고속 먹거리들이 주인공이 되는 코코몽, 해외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니모, 포뇨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현실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인가 흔히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기에 어른들에게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관심밖의 대상인 것이다. 8개월이 지난 아가들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해서 의자, 침대에서 곧잘 떨어지기도 하고, 펄펄끓는 물 가까이에 가기도 한다. 돌이 지나 혼자걷게 되는 단계에 이르면 어떠한가. 모서리가 날카로운 시멘트계단도 마구 혼자 내려가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이내 넘어지곤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들이 직립보행의 시기를 지나 성장해가면서 동화속 이야기, 판타지의 세계는 서서히 영화가 결말로 치닫듯이 현실의 옷을 입는다.

현실을 파악하고 인식해가는 과정 그것이 우리 인간 삶의 여정이라면, 우리는 어린시절 현실로서의 현실을 인식하기보다는 판타지로서의 현실을 먼저 인식하고 나서야, 판타지가 사라진 현실을 인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이들의 인식단계에서의 판타지는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또 다른 이름의 현실인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매년 12월이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굴뚝으로 들어와 크리스마스선물을 두고 간다는 판타지의 세계를 너무도 당연하게 이야기, 아니 거짓말하며 함께 즐기기까지 한다. 성인이 되어서조차 판타지는 우리 삶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영화관람의 경우, 우리는 영화라는 장치가 비현실적인 것임을 알면서도 영화를 보기위해, 영화라는 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돈을 지불하며 기꺼이 영화관 곧 판타지의 공간으로 들어가길 즐긴다. 장 루이 뢰트라는 <영화의 환상성>에서 영화관은 가시화된 초현실의 세계라 말한다. 현실과 판타지,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재현하는 정연두의 씨네매지션 또한 우리에게 판타지로서의 현실, 현실로서의 판타지세계로 입장할 것을 주문한다.

 

시각적 이데올로기의 실험

2005년 다수의 어른들의 눈엔 엉터리그림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그림을 사진으로 현실화시킨 <원더랜드>시리즈, 2006년 영화무대처럼 세트를 만든 후 사진으로 재현한 영화로의 전이징후를 보인 <로케이션>, 2007년 작가의 첫 moving image작업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에 이르기까지 정연두는 정지된 이미지, 사진의 재현에서 무빙이미지로 이동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알프레드 바가 초대관장이던 시절 1930년대 세계 최초의 영화아카이브를 만든 뉴욕 모마가 70년대 이후 비디오아트영상을 수집한 이래로 백남준이후 두번째 한국출신작가의 영상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어>를 구입했다는 보도는 그의 무빙이미지에 대한 본격적 관심을 뒷받침한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2000년대 미술가들의 영화작업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격적 영상작업이라 평가할 <씨네매지션>2008년 국내보다 해외, 뉴욕에서 먼저 선보인 작품으로 영화, 공연, 미술, 연극 그 어디쯤에 위치해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우선 시각적 관심의 대상이다. 정연두의 씨네매지션은 영상과 마술쇼를 결합한 실험적 전시, 말하자면 공연관람의 경험을 전달하는 형식의 전시회다. 전시를 공연장에서 보는 것이라 요약한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의 전시만을 보아왔던 관객들과의 예술체험에 있어 미적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이 될터이다.

씨네매지션의 구성은 이렇다. 첫번째, 이은결이라는 신세대 마술사가 무대위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공연이 아니라, 무대위에 공연자와 이를 돕는 주황색단체복을 입은 남자 도우미들이 등장하여 무대 배경이 되는 세트를 변경하고 재설치하며 공연이 끝날때까지 주인공인 이은결을 보조하며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고정된 위치에 놓인카메라앞에 선 촬영감독은 바로 이 무대를 촬영하고, 세번째, 무대상단에 마련된 스크린에서는 실시간영상으로 이은결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우미들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위치에 서서 세트를 움직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객석의 관객은 영상과 무대공연을 함께 관람하게 된다. 현실과 판타지를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이 특이한 미적 체험의 순간은 공연의 형식이기에 일반 전시장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시간보다 오랫동안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갤러리에서 우리는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기보단 그 결과물만을 본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촬영세트를 구성하고 몇 개월간 찍은 장면들 중 감독에 의해 편집 선택된 영상만을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관람한다. 이 같은 기본적 관람방식을 전복하여 제작과정을 완성작과 함께 관람하게 하는 이 생경한 시각적 경험만으로도 정연두는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일정부분 자랑할 만하다.

영화연구가들은 미래의 영화는 게임처럼 이미 만들어진 여러 편의 결말의 스토리를 관객취향에 따라 선정하여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한다. 최근의 미래적 예견보다도 더 급진적인 이 같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은 갤러리라는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블랙박스, 극장안에서 유일한 빛의 공간 스크린에 몰입하는 영화관람방식에 길들여진 관람객에게, 즉 전통적인 시각적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관객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

 

Cine + Magician : 영화마술가 정연두

정연두의 시각적 이데올로기의 실험성이 돋보이는 <씨네매지션>은 얼핏보면 요즘 국내에서

유행하는 공연의 외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진재현에 머물던 스틸작업이나 무빙이미

지로 이동한 최근작들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즐겨쓰는 무대배경은 연극요소가 가미된 초

기영화처럼 영화와의 친연성을 드러낸다. 특히 <씨네매지션>이라는 제목에서 그의 영화적

관심을 피할수 없게 한다. 1895년 영화탄생의 주역 뤼미에르가 리얼리즘영화로 구분되는 최

초의 영화 <공장을 나서는 사람들>을 만들자, 마술사였던 프랑스인 조르주 멜리아스는 SF

영화의 효시로 간주되는 <달나라여행>을 만든다. 판타지영화로도 분류되는 <달나라여행>

마술사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멜리에스의 걸작이다. 드로잉에도 재능을 보였던 멜리에스

는 당시 인기있는 마술사로 활동하며 영화감독, 미술감독, 시나리오작가, 배우 등 일인다역

을 하며 종합예술인 영화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에 관한 다큐멘

터리영화에서 멜리아스는 직접 칠판위에 Cinemagician이라는 글씨를 쓰며 자신을 소개한

. 영화야말로 마술 같은 환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깨달은 멜리아스는 최초의 특수효과영

화로 간주되는 <달나라 여행>을 만든 것이다.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기법이 등장하는 것으

로도 유명하며 한편의 라스베가스의 유명 매직쇼를 보듯이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배경은 그

스펙터클을 능가한다. 정연두는 Cinemagician의 제목이 멜리아스의 영화제작방식에서 아

이디어를 얻은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영화마술가쯤으로 해석되는 제목처럼 정연두는 마술

을 가미한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특히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무대배경은 연극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초기영화사의 전형을 닮았다.

<Cinemagician>에서 눈여겨볼만한 앞서 언급되지 않은 등장인물이 있는데, 그것은 앤딩크

레딧이 나올때까지 무대에서 감초역할을 하는 인물인 검은 두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남

자이다. 그는 무대에서 세트를 조정하는 밝은 주황색옷을 입은 남성들과 대조를 이루며 이

은결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주무대에서 이은결을 따라다니며 그의 퍼포먼스를 돕는다. 이를

테면, 2장으로 구성된 공연이 그 시작을 알릴 때 무대배경역할을 하는 여름, 겨울풍경이

담긴 조악한 스크린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검은 커튼을 열고 닫을 때, 여름낙시터의 잔디밭

에서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연출하는 장면에서 이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의 역할은 매직쇼의

절정을 이룬다. 이 남성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위해 자신이 할일이 없을 때는 무대바닥을

기어다니거나 구르거나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관객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럴 때마다 관객은

스토리와 관계없이 폭소를 자아낸다. 이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은 바로 분라쿠로 불리는 대

표적인 일본전통인형극에 등장하는 검은 두건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인형을 조정하는

로코(黑子)를 패러디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무대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이 쿠로코의 존

재가 실시간 촬영되는 영상화면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연극을 보며 관객은

쿠로코의 실체를 알아차리지만 검은색이라는 변장술을 통해 쿠로코가 무대에 없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그저 인형만이 움직이는 것으로 시각적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와

판타지가 동시에 공존하는 분라쿠의 상연방식을 차용한 정연두의 <Cinemagician>은 영상

이라는 스크린장치를 덧붙혀 우리의 고정된 시각체험방식을 교란시킨다. 무대를 보며 웃는

관객은 영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쿠로코의 존재, 즉 코믹하지 않은 부분에서 웃음을 던지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과 같다. 명징하게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해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의 시각적 경험을 제시하는, 실제와 판타지세계의 그 경계의 모호함 혹은 공존을

함께 보여주고자 하는 정연두의 연출력은 멜리아스가 자신의 영화에서 선보였던 한편의 마

술쇼인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하는 또 다른 정연두의 연

출력은 사운드효과에서 드러난다. 이는 영화적 장치를 차용한 것으로 초기영화시대 즉 무성

영화시기 대사와 효과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변사의 역할을 닮았다. 주황색옷을 입

은 도우미남성들과 검은 옷을 입은 쿠로코외에 홍일점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등장인물은

흰색 정장을 입고 효과음을 연주한다. 1시간여동안 아무런 대사없이 진행되는 매직쇼는 그

야말로 지루함을 느끼기 충분하다. 여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연주가는 효과음을 만들어낸다.

정연두의 페르소나라 불러도 좋을 마술사 이은결이 스케치북에 풍경화를 그리며 시작된 쇼

는 그림속 풍경이 실제 무대에서 겨울과 여름을 오가며, 영화처럼 본 내용이 끝나고 앤딩크

래딧이 나오는 영화장치를 패러디해 유머러스한 장면을 연출한다.이 마지막 연출은 쿠로코

의 역할이 돋보이는 부분으로 쿠로코는 닌자처럼 어깨에 메고 온 검은색 긴 원형통에서 순

차적으로 앤딩크레딧을 하나씩 꺼내어 펴든다. 영상화면에는 그러나 쿠로코의 모습은 여전

히 보이지 않고 앤딩크래딧만이 클로즈업된다.

이렇게 쇼는 막을 내린다. 쇼를 보는 내내 나는 영화계의 못된 관행들이 떠올랐다. 배우들

의 고액의 출연료에 비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연출부 인력들의 현실이 보였다. 작가가 작

품을 완성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가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는 노동의 과정이다. 하지

만 영화는 다르다. 제작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협업해야만이 제대로 된 작품이 완성된다.

작품을 영화계에서 관람한다면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제작인력의 고단함에 대해 재고하게

되지는 않을런지.. 이같이 다양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미를 고찰하게 하는 정연두의 <

네매지션>은 그러나 결정적인 실수를 보인다. 이은결의 매직쇼를 저 멀리서 더욱이 무대보

다 높은 곳에서 감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무대와 같

은 눈높이에서 관람하는 관객은 머리위에 걸린 스크린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무대와 영

상을 모두 보아야만이 제대로 된 감상법일텐데, 이는 마치 갤러리에서 영상작품이 벽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이는 앞으로 정연두의 연출력이 해결해야할 중요한 요소

이다.

( 글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평론활성화지원사업' 통해 선정, 지원하는 평론가가 '2010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 선정 작품을 대상으로 작성한 현장평론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IA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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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YEBALL_Media Arts 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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